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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사적지, 언택트 시대 급부상하는 경주 드라이브 코스

사람 붐비는 인기 관광지보다, 고즈넉한 역사 유적지에서 즐기는 여유

강봉석 MT해양 울산,포항 객원기자||입력 2020-10-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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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사적지, 언택트 관광객들에게 인기
‘경주 동남산’에서 ‘낭산’, ‘토함산’을 넘어 ‘문무대왕릉‘까지
일제 강점기에 맥이 끊겨진 신라의 유적지 다시보기
1일 1테마 드라이브 코스 (총거리 41km, 66분)




경주는 세계 최고의 ‘노천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역사적 볼거리가 있는 관광명소이다. 시내에 가까운 관광지들(경주남산권, 보문관광단지, 경주대릉원 일대)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반면, 동해바다에 인접한 문무대왕 사적지는 접근성이 떨어져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인적이 뜸한 관광지를 찾다보니 드라이브 코스로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다. 본 기사는 문무대왕을 테마로 여행하기 좋은 관광 사적지들을 둘러보았다. 문무대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통일전에서 시작하여, 문무대왕이 호국을 위해 지은 사찰이 있는 낭산을 거쳐, 문무대왕릉이 있는 동해권에 이르는 총거리 41km의 1일 드라이브 코스이다.

<통일전>
죽어서도 바다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전설을 따라 국립공원 동남산(경부고속도로 출구에서 3.6km)에 위치한 통일전을 찾았다. 통일전은 코로나19로 휴관되어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이곳은 최초 삼국을 통일한 신라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있는 곳이다. 신라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은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진골 출신의 왕이다. 삼국통일(676년)은 30대 문무대왕이 이루었다.

<낭산, 선덕여왕릉>
통일전을 나와 북쪽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따라 2km 정도를 이동하면 낭산(狼山)을(경주시 배반동) 만날 수 있다. 고도 100m 정도의 낮은 산으로 신라 왕실 제사와 화장터가 있어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27대 선덕여왕릉은 낭산(108m) 봉우리 정상에서 남쪽을 향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무리의 현지인 관광객들이 “사방의 모든 소나무가 능으로 누워져 있어 신성한 곳이라고 찾았다.”라며 상석에 음식을 차리고 재를 올리고 있었다. 주변에 작은 무덤으로 보이는 봉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옛날 민초들이 명당으로 여겨서 장사가 꽤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낭산은 백결선생 최치원선생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문무대왕 유적지 4곳(선덕여왕릉, 신문왕릉, 사천왕사지, 능지탑지)를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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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릉에 재를 올리는 관광객의 모습
<신문왕릉>
31대 신문왕릉은 낭산 남쪽 끝자락 능마을에 위치한다. 7번 국도(경주→울산 가는 길)의 바로 왼편에 있다. 표지판에 “문무왕의 맏아들로 부왕의 뜻과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능을 둘러싼 소나무 대부분은 새로 조성되어 보였고, 주차장이 7번국도 갓길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간이휴게 장소로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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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릉 전경
<사천왕사지>
사천왕사지는 신문왕릉에서 500m 떨어진 낭산 아래 위치하여 신문왕릉과 선덕여왕릉 사이에 있다. 지면보다 높이 조성된 건축물 터가 다섯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문무왕 19년(679년)에 당나라 침공을 대비하여 세워진 호국사찰로써 터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각각이 놓인 커다란 주춧돌들로 보아 당시 그 규모가 웅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천왕사는 신라 향가의 산실이기도 하다. 현재는 유적발굴공사 중이다. 이곳에서 낭산 남쪽 능선을 쳐다보니 철길 넘어 선덕여왕릉이 가까이 보인다. 사천왕사지에서 선덕여왕릉으로 바로 갈 수 있었던 연결로가 일제 강점기에 놓인 철도로 인해 끊긴 상태이다. 필자가 취재하는 중에도 기차가 수시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동해남부선이 철거되면 다시 복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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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에서 바라본 낭산. 선덕여왕릉이 노송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능지탑지>
능지탑지는 낭산 서쪽에 위치한 문무대왕 화장터로 추정하는 곳이다.(전 동국대 사학과교수 황수영 박사) 사천왕사지에서 7번국도로 나와 우측으로 돌아 철길을 넘어 좁은 골목 끝자락에 민가들과 함께 있었다.(1km, 승용차 2분) 표지판에 “5층탑(4.49m)인데 1979년 무너진 탑을 다시 쌓을 때 원형을 몰라 2단 만 쌓고 나머지 돌은 옆에 두었다.”고 기록 되었다. 주변은 복원하다 남은 돌 수백기가 사방에 경계석으로 쓰이고 있었다. 탑 옆 노송은 푸른 자태를 뽐내며 잘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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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산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능지탑지의 뒤편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이제 동해와 가까이 있는 사적지(이견대, 문무대왕릉, 감은사지)로 향한다. 능지탑지에서 이견대까지 추천코스는 7번 국도에서 불국사를 지나는 토함산 4번 국도로 총 31km의 30분 소요거리이다. 동해고속도로(울산-포항)를 이용하면 33km로 크게 차이가 없다(지도의 초록색 코스 참고). 필자가 취재 전 사전 답사 때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거쳐 토함산(745.8m) 정상으로 지나가는 길을 택했다(지도의 빨간색 코스 참고). 토함산에서 문무대왕릉이 있는 동해를 바라보며 문무대왕암을 찾아가는 길은 굽이굽이 고갯길로 여유롭게 풍경을 품을 수 있다. 이 길에서는 이견대 옆에서 동해구(東海口)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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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을 찾아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동해구. 멀리 문무대왕릉이 보인다
<이견대>
이견대(利見臺)는 문무대왕이 용이 되어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장소로써 이를 기리고 문무대왕의 수중릉(水中陵)을 바라보기 위해 언덕 위에 신문왕이 세운 정자이다. 후에 이견대는 없어졌다가 1979년 신라 건축양식으로 새로 지었다. 이견대에서 남쪽 방향 대종천 건너 봉길해수욕장이 바라다 보인다. 그 앞에 파도가 부서지는 곳이 문무대왕릉이다. 이곳에서 문무대왕릉까지 이동 거리는 1.6km, 2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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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에서 관광객들이 문무대왕릉을 바라보고 있다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은 봉길해수욕장 내에 있다. 해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길이 20m 크기의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암초이다. 이 장소는 신라 전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만파식적(萬波息笛)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용이 된 문무대왕이 신문왕에게 “어진 왕은 소리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바위섬에서 자란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불면 비를 내리기도 하고 나라의 어려운 일이 잘 풀릴 것이다.”라고 하여 당시 역병이 창궐하여 힘들어하던 백성들을 태평하게 다스렸다는 이야기이다. 만파식적 표지석 옆 해설문에는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30대 문무대왕을 장사지낸 곳으로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문무대왕릉 주변은 자연 그대로이며 개발 흔적이 전혀 없다. 주변 조립식 횟집들은 여름 한 철 영업한 흔적만 남았고, 오징어와 쥐포를 파는 이동식 판매대 몇 군데만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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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대에서 바라본 문무대왕릉. 사진 가운데 멀리보이는 암석이 문무대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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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 해변, 지역특산물 판매대에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모습
<감은사지>
마지막으로 감은사지를 향해 건너왔던 다리를 다시 건넜다. (1.7km 2분소요) 감은사지는 봉길해수욕장으로 흐르는 대종천 하구의 바닷가에 있다. 석탑 2기가 나란히 서 있고, 중앙에는 몽골침입 때 소실된 절터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도 터 바닥 디딤돌 위에 장석으로 마루를 깔듯이 되어있어 절 아래에 공간이 있었다. 절터 앞에는 배가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 흔적도 남아있다. 바닷물이 절 밑으로 들어오게 설계되어 죽어서 용이 된 문무대왕이 드나들었다는 흔적의 절터이다. 현지 작은 구멍가게에 걸려있는 옛날 사진 속에는 절터까지 초가들이 즐비했으나 모두 이주시키고, 관광객들에게 먹거리를 판매하는 민가 몇 군데만 남아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오히려 관광객이 증가하여 하루 수백 명씩 찾아온다.”라고 좌판을 지키는 할머니가 말해주었다. 감은사터·삼층석탑 안내도에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를 막고자 짓기 시작했지만, 역사를 마치지 못해 신문왕 2년(682년)에 완성한 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부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성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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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절터 디딤돌위에 장석, 절 아래 공간이 있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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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바라본 감은사지 절터와 삼층석탑 전경
드라이브스루로 문무대왕 사적지를 찾아 떠난 여정이 마무리되니 가을 해는 산등성 억새에 걸려있었다. 한적한 문무대왕의 사적지들을 둘러보면서 죽은 뒤에도 나라와 백성 지키고자 했던 만파식적의 피리 소리가 파도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았다. 고대 한반도를 이끌던 신라 시대 문무대왕이 나라를 위한 염원으로 동해에 묻혔다. 코로나로 불안이 가득한 이 시기에도 잔잔한 마음의 위안을 전해주는 것을 느낀다. 마스크를 벗고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