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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오죽헌

김미영 MT해양 동해,속초 객원기자||입력 2020-10-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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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자인 아들과 예술가인 어머니. 그들의 삶과 학문, 예술적 성취를 살펴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오죽헌!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건립연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단종 때 병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헌(1428~1507)고택이라고 불리는 점으로 이루어 적어도 15세기 후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조선 문화재 보호령에 의해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다가 1975년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문성사와 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안채와 곳간채 및 사주문이 해체되었다. 1995년 오죽헌 뒤의 고택이 다시 복원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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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입구 안내판
오죽헌은 율곡의 외가이자 사임당의 친가다. 흔히 경내에 자리한 별당, 안채와 바깥채, 문성사, 어제각을 합하여 오죽헌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하게는 율곡이 태어난 별당을 말한다.
오죽헌은 뜰에 나무줄기 빛깔이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유독 많다. 하여 이름 붙였다. 율곡이 태어난 방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질 때와 출산할 때 모두 용꿈을 꾸었다 해서 “몽룡실”이라 불린다. 현재는 신사임당의 열정이 모셔졌다.

오죽헌은 현존하는 주거용 주택 중 비교적 오래된 축에 속한다. 간결한 형식으로 지어져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어떻게 강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조선중기에 대학자 율곡의 존재 덕분이다. 율곡은 여덟 살 때 파주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팔세 부사” 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다. 열세 살 때 치른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스물아홉 살 때 치룬 문과에 이르기 까지 아홉 번의 과거 시험에 모두 장원 급제하여 “구도장공원” 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능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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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어제 각에는 율곡이 어릴 때 사용했던 벼루와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격몽 요걸>을 전시하고 있다. 뒤뜰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가 있는데, 이겸(송승헌 분)이 고뇌에 잠긴 채 걷는 장면을 촬영 한 길이다.

이겸도 사임당에게 지고자순한 사랑을 바치는 인물이다. 도포를 멋지게 차려입은 이겸이 감정을 잡고,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어린 시절의 사임당은 안견의 “금강산도”를 보기 위해 “헌원장” 담을 넘다가 이겸과 운명적으로 마주쳤다. 두 사람의 애틋한 첫 사랑이 시작 되는 순간이다.

강릉 오죽헌 “율곡매”는 오죽헌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에 심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가꾸었다고 전한다.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고매도, 묵매도등 어려서부터 매화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 으로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했다. 또 이이가 열 살 이전까지 쓰던 용면 벼루에도 움트는 매화가지가 새겨져 있는데, 매화꽃이 피고, 열매 밎듯이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에서 꽃망울 없고 움트는 가지만 새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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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의 대나무
오죽헌, 대문 밖을 나서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제법 키가 큰 소나무들 사이로 예쁜 오솔길이 나 있다. 해설사(김해경)가 가르쳐 준 데로 율곡인성교육관을 관람했다.
신사임당, 율곡(이이)등 조선시대 선비의 높고 뛰어난 정신과 꿋꿋한 기상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디지털 체험 공간 율곡인성교육관 인성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지난 14일 오죽헌 시립박물관에서 박물관 동산에 생육중인 오죽 일부에서 꽃을 예쁘게 매단 모습이 환상적이다. 대나무 꽃은 60년 혹은 120년 만에 핀다는 주기설이 전해질 만큼 꽃이 핀 모습을 보기란 쉽진 않다.
전설에 의하면 대나무 열매는 태평성대나 출현한다는 봉황이 먹는다고 알려질 만큼 귀하고 대나무 꽃이 피면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져 국가에 길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여겨왔다.

오죽헌 시립박물관 관장(최백순)은 “강릉의 대표적인 명소에 핀 오죽꽃은 코로나19로 인해 전대미문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 오죽헌의 전령이자 길조다”라며 “앞으로 강릉시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길 징조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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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내부 기념촬영 캐릭터 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