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윤병훈 칼럼]문어돌림판 장난감

윤병훈 뉴미디어본부장전무||입력 : 2019.07.08 13:44
공유 :
 
어느 책에선가 거꾸로 그린 세계지도를 보았습니다. 전혀 다른 지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계지리라는 바뀔 수 없는 고형물을 거꾸로 하자 마치 다른 행성의 지리인양 느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꾸로 그린 세계지도를 보는 것 같이 전후좌우, 부분과 전체 등 시각(時角)과 시야(視野)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고정화된 인식의 틀이 얼마나 견고하게 자라잡고 있었는지 깨우치게 됩니다. 고정화된 틀과 낡은 상식을 깨고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구체적인 힘이 넓고 다양한 시각(時角)과 시야(視野)를 품은 상상력(想像力)입니다.

극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코앞의 현실에 눈을 두고 나아가기 보다는, 한없이 열려 있는 무한한 공간을 향하여 다가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곳으로 눈길을 주고 그 곳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50년 후의 바다상상하기 그림 그리기 공모전>은 꿈과 희망을 탐색해야 하는 곳 중 하나인 바다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접합시키고자 기획한 공모전입니다. 자연을 가까이할 기회가 적어 자연과의 교감력이 사라져가는 아이들의 감수성(感受性)을 되찾기 위한 공모전이기도 합니다.

매년 접수되는 아이들의 그림을 살펴보다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느껴집니다. 많은 아이들이 일률적으로 미래를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묘사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은 드론과 로봇이 활거 하는 만화 같은 세계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려졌던 많은 일들이 현실화되면서 어른들이 미래를 현재의 연장선에 놓고 생각한 것이 아이들에게 스며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류가 맞이할 미래가 (과학과 기술이 결합된) 천재적인 기계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인간이 과학기술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만큼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서식지 지구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지구에 서식하는 수백만 종의 유기체 중 하나일 뿐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생물종들이 인간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습니다. 동식물의 멸종과 개체 감소는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의존하며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된 듯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동,식물을 포함한 공동체 모두의 자유와 권리(인권과 동물권과 식물권)가 보편적으로 존중되고, 문화적, 경제적 평등 등 수많은 사회 구성 원리가 모순 없이 기능했을 때만이 맞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image
보리초등학교 1학년 소 원 학생의 미래해양왕상 수상작/사진제공=머니투데이
사진의 그림은 대구 본리초등학교 1학년 소 원 어린이가 그린 상상화입니다. 바다에서 사람과 인어, 그리고 물고기들이 함께 모여 문어돌림판(빨판)을 장난감 삼아 돌리며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아이에게 바다는 신나는 놀이터입니다. 놀이 동무도 문어와 물고기입니다.(문어다리 빨판이 ‘많다’라는 생각을 형태화한 모습이 독특합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이들과 물고기, 문어가 모두 행복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림을 그린 어린이가 물고기나 문어의 지능과 감수성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놀이에서도 상대가 즐거워하지 못하면 자신도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듯 그렸습니다.

미래에 대한 구상(構想)은 현실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회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개념이 현재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가 과학기술 지상주의의 세상만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함께 살아갈 공동체 모두의 미래를 구상하는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넓고 다양한 시각(時角)과 시야(視野)를 품은 상상력(想像力)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와 인류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