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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칼럼]페르귄트의 바다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입력 2021-01-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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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귄트(Peer Gynt)라는 인물이 있다. 노르웨이의 입센(Ibsen)이 쓴 동명 희곡의 주인공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이그(Grieg)가 이를 바탕으로 작곡한 관현악 모음곡이 더 알려져 있다. 그 중 ‘솔베이지(Solveig)의 노래’가 특히 유명하다.

페르귄트는 망나니다. 바람둥이, 허풍쟁이, 사기꾼 등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이상할 게 없는 친구다. 사랑하는 솔베이지를 기약도 없이 기다리게 해놓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노르웨이판 ‘그리스인 조르바’다. 한편으로는 틀에 박힌 생활을 벗어나 거리낌 없이 사는 것이 부럽기는 하다.

바다는 처음에 페르귄트에게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노예무역, 성상(聖像) 판매와 같은 비윤리적인 해상운송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 요트까지 소유했다. 이러자 거드름을 피우며 세계 황제가 되겠다는 허풍을 떨기도 했다. 결국 밉상 짓이 지나쳐 요트도 잃고 돈까지 털린다. 여자를 유혹하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바다가 자비를 베풀어 그의 잘못을 눈감아 주었는데도 경거망동하니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노년의 페르귄트는 남은 재산을 챙겨 배를 타고 귀향길에 오른다. 근신해야 함에도 선원들에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바다는 반성할 줄 모르는 그를 응징하기로 한다. 요나가 신의 명령을 듣지 않자 바다가 대신 벌했으며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분노로 바다에서 온갖 고생을 겪은 후에야 고향에 갈 수 있었지 않았는가.

바다가 거칠어지면서 그가 탄 배는 좌초돼 침몰해버리고 구명정에는 그와 요리사만 살아남는다. 구명정마저 전복되자 붙잡고 있던 나뭇조각으로는 둘 다 버티기 어려웠다. 서로 살겠노라 다투다가 요리사는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페르귄트만 무일푼으로 육지에 오른다. 바다가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한 것이다. 그래도 목숨만은 살려줘 자기를 기다리던 솔베이지에게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얻도록 하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영화 벤허(1959)의 주인공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이 초창기에 무성영화 페르귄트(1941)의 주연을 했다는 점이다.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 벤허와 만찬을 즐기는 사업가 페르귄트의 장면이 오버랩 된다. 둘 다 마지막에 자아를 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만 이에 이르는 과정은 극과 극이다.

요즘 페르귄트보다 더 못된 이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무기탄(無忌憚)한 인간들이 도처에서 날뛴다. 자기 허물은 감추고 남의 것만 들춰내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을 민족이나 국가에 앞세우는 뻔뻔함에 할 말을 잃는다. ‘내로남불’이 사자성어로 오인될 만큼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내 탓[mea culpa]이 정말 드물다.

이들을 모두 배에 태워 바다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고 싶다. 바다가 합당한 벌을 내려 부당 이익을 환수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을 때까지 그들을 혹독하게 다뤄야 한다. 페르귄트의 바다는 이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혹시 바다에서 날씨가 거칠어 괴로운 상황에 처하거든 내 잘못 때문이라고 반성하자. 바다가 곧 잠잠해질 것이다. 세상이란 바다도 마찬가지이다. 죄짓고 바다에 나가지 말며, 세상에 나서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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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_Grieg_(1888)_by_Elliot_and_Fry & Henrik Ibsen, 1898, by Gustav Borgen/ image by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