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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 칼럼]보이지 않는 유령선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입력 2020-11-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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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낚시어선이 다리와 충돌하여 인명피해가 다수 발생하였다. 파고도 높지 않고 안개도 없었는데 사고가 난 것이다. 새벽이지만 불빛도 잘 보이고 레이더도 있고 또 자주 다니던 뱃길일 텐데 다리를 들이 받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 사고도 그렇지만 배끼리 충돌하는 사고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큰 배라고 예외는 아니다. 수년전 미국의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이 대형 충돌사고를 연달아 두 번 일으켰다. 이 사고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으며 미 해군은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많은 인원이 근무하는데도 충돌을 막지 못한 것이다. 또 그 전에 동해에서 우리 어선과 접촉사고도 있었다. 큰 사고의 조짐이 있었는데도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의 압축판을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선박들은 충돌예방을 위한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유자격 승무원을 태우고 있으며 교통관제시스템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어 웬만해선 넓은 바다에서 서로 부딪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는 난다. 많은 눈이 보고 있는데도 왜 못 막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최근 블랙박스에 찍힌 자동차 사고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에 예측과 대비가 불가능한 경우이다. 하지만 배는 그 정도는 아니다. 한 참 멀리서 확인할 수 있고 빨라봐야 30~50km/h 정도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저쪽 배가 나를 향해 방향을 확 틀었다느니 불쑥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느니 아니면 전에 없었는데 갑자기 생겼다느니 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눈에 뭐가 씌웠던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라는 실험이 있다. 실험대상자들은 어느 한 곳에만 집중하다가가 앞에 뻔히 있는 고릴라를 알아보지 못했다. 바다에서 이런 대표적 사례가 2001년 미 핵잠수함과 일본 실습선이 충돌한 사고다. 당시 잠수함은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충돌할 때까지 아무도 그 배를 보지 못하였다 한다. 잠수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물위의 배끼리는 더 똑똑히 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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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of the Flying Dutchman by Charles Temple/Wikipedia
아마 보이지 않는 유령선幽靈船이었을 것이다. 유령선은 사람 없이 홀로 떠다니는 배다.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전설처럼 허구라고 생각되지만 그런 배가 실제 있었다. 충돌사고가 나면 으레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 조타실에 아무도 없어서 충돌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한 것이니 유령선이나 다름없다고 상대를 비난한다. 한 쪽이라도 제대로 보았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뻔히 있는 상대를 못 보았으니 결국 둘 다 유령선이었던 셈이다.

물론 사고 직전에 상대를 알아보지만 너무 가까워 어쩌지 못하고 충돌하고 만다. 그 전에 무엇을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상대가 알아서 피해갈 줄 알았다가 그나마 솔직한 진술이다. 제각기 당직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충돌을 막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양쪽의 말을 종합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 없다는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최고의 장비를 갖춘들 무슨 소용인가.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충돌위험을 미리 알아내야 하는데 다른 곳에 관심을 두다 보면 배 혼자서 알아서 가는 유령선이 되어버린다. 상대방도 같은 현상을 보이며 유령선화 한다. 자기 업무에 충실해야 하지만 쓸데없는 곳에 집중하다가 피항동작避航動作 시기를 놓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배들이 바다 위를 다니고 있다. 이 중에도 유령선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찾아내야 한다. 조타실에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많아 경계를 소홀히 하기 쉽다. 엉뚱한 것에 한 눈을 팔다가 앞을 안 보는 것이다. 휴대폰은 두말할 필요 없다. 보이지 않는 유령선을 찾으려면 내가 먼저 깨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찾으면 고함을 쳐서 깨워야 한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라고.

요즘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택적 집중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그래서 근거 없는 확증편향이 생겨나고 착각과 오판을 당연시 한다. 양쪽으로 나뉘어 자기 것만 보고 듣는다. 언론기사도, 유튜브도 제목만 보면 내편인지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다. 배는 충돌하면 큰일이지만 양쪽은 충돌하여 섞여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나 혈구지도絜矩之道가 자주 들려야 한다. 보이지 않는 벽을 찾아내 무너뜨리는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