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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 칼럼]어쩌다 선장 바울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입력 2020-1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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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바다를 다니면서 여러 차례 난파를 당했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27장은 바울이 탔던 배가 조난되고 모두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천 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당시 상황을 실시간 영상처럼 보는 듯하다. 어떤 학자는 이 기록이 고대 지중해의 선박조종술을 알아보는데 가장 유용한 문서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범선의 구조나 운용술, 항해술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용어나 내용이 매우 낯설어 전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배에서 바울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이 선장 역할을 제대로 하여 모두 구조된 것이다. 이 배에는 죄수, 호송군인, 선원, 승객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바울이 대체 어찌하였기에 그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까? 종교적 관점이 아니고 선박운용 측면에서 판단한다. 즉 정식 선장이 아닌 어쩌다 선장이었던 바울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우선 그는 항해의 위험성을 예측하였다. 당시 선장은 머물던 항을 떠나 다른 곳에서 겨울을 나고자 했다. 이에 바울은 항해가 매우 위험할 것으로 예상하고 중단하기를 권유하였다. 하지만 당시 죄수신분이었고 해양 전문가도 아닌 바울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물론 바다 날씨가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하였지만 출항해야만 하는 여러 사정도 있었다.

헌데 바울은 어떻게 위험을 알아차렸을까? 그는 이미 지중해를 수차례 다녔으며 세 번이나 파선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록 승객이었지만 선원이 겪는 모든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체험했을 것이다. 즉 실습을 충분히 한 것이다. 게다가 법률전문가인 바울의 능력이면 항해술도 단시간 내에 학습하였을 것이다. 상당한 해상경험에다 예지력까지 갖추었으니 위험성을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항해과정에 적극 개입 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배는 출항하였고 강력한 북동풍을 만나 조종능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또한 그는 배 전체 분위기를 장악하는 지휘능력을 보였다. 배가 바람에 밀리자 해묘海錨를 내리고 표류하면서 장비와 짐도 버려야 했으며 사람들은 먹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바울은 ‘내 말을 듣지 않아 이 꼴을 당했으나 나를 따르면 모두 살 것이니 안심하라’고 주장한다. 선상반란에 가까운 도발적인 선동이다. 하지만 구조될 희망이 사라진 시점에서 누군가 앞장서서 삶의 불씨를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이며 선장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나서면서 배의 지휘권이 바울에게 넘어갈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권력의 이동이다.

그리고 감독을 철저히 하여 배의 안전을 확보하였다. 배가 육지에 접근하자 좌초를 막고자 닻을 내렸다. 그런데 선미에만 내리고 선수에는 선원들이 도망가려고 닻 대신 보트를 내린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즉시 호송지휘관에게 선원들의 도주를 막도록 하였다. 이는 지시명령에 가까우며 선장이나 가능할 법하다. 만약 선원들이 없었다면 배는 빠르게 밀리면서 암초에 걸려 깨지고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배 전체를 감독하고 지휘한 셈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낯익은 장면이 떠오른다. 소설 로드짐Lord Jim에서 순례자 800여명을 태운 배가 좌초되자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 몰래 보트를 내린다. 주인공 짐도 주저하다가 함께 타고 도망간다. 최후까지 사람과 배를 지켜야 할 선원의 직업윤리를 저버린 그들이었다. 바울은 선원들이 배를 끝까지 책임지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뱃사람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만약 배와 승객을 버리고 도망가는 선원들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성경에 전해져왔다면 그 후유증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재난관리를 제대로 했다. 지휘관의 핵심 능력이다. 이미 2주 동안 표류하여 탈진한데다 자력항해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바울은 배안에 있는 276명에게 생존의 확신을 심어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정신력과 체력을 비축해야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또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배를 임의좌주任意坐洲시킬 준비도 철저히 했다. 아쉽게도 배가 펄이 아닌 모래톱에 얹히면서 반파되자 모두 탈출해야 했다. 일부는 헤엄을 쳐서, 일부는 부유물에 의지하여 몰타Malta에 모두 안전하게 상륙하였다. 비록 배는 잃었지만 ‘전원구조’된 것이다. 전원구조란 말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기적 같은 일이다. 불과 수년전 그렇지 않았던 사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바울은 정말 선장이라고 할 만하다. 어쩌다 선장 바울이 늘 선장을 대신하여 모두를 구조한 것이다. 탁월한 공을 인정하여 당연히 훈장을 수여하고 선장 면허가 없다면 명예선장 증서라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갈등과 분열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나를 따르라고 앞장서는 어른이 필요하다. 몸 사리지 않고 바람과 싸우며 생존의 바닷길로 안내하는 그러한 리더를 기대한다. 어쩌다 선장이 늘 선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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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