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MT해양 칼럼]사서삼경에서 바다 찾기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 에디터|, 정명근 MT해양 전문편집위원| 에디터||입력 2020-10-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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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과거에 급제하려면 기본서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엄청나게 공부해야 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보통 이삼십년 이상 시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경전의 중요부분을 거의 다 암송해야 했을 것이며 한 번 외운 문장은 늙은 나이에도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구구단을 잊어 먹던가. 그래서 사서삼경의 주요 내용은 그 시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지배세력이나 사회지도층의 DNA에 심어져 내려와 사회전반에 부지불식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과거준비생들의 머릿속에 바다가 있었을까? 다른 변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확인 방법은 사서삼경에 바다[海]가 얼마나 나오는지, 그리고 그들의 지식체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먼 옛날 동북아 해상을 장악했던 해양민족이 왜 바다를 홀대하게 되었는지 그 실마리를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해양인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전개과정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유교경전을 통해 조상들에게 투영된 바다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우선 “해海”자를 사서四書에서 검색해보았다. 34번 나온다. 혹 차이가 나도 한 개 정도다. 논어 4번, 맹자 27번, 중용 3번이며 대학은 아예 없다. 사서에 나온 한자 숫자는 판본이나 주석본 그리고 집계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여러 문서를 비교하여 약 5만 7천자로 하였다. 이렇게 따져보니 “해”는 사서 전체 한자의 약 0.06%밖에 되지 않았다. 전체 한자 수에 변동이 있더라도 차지하는 비율은 거의 일정하였다. 무시할 정도의 비중이다.

이번에는 “해”가 들어간 단어나 어구를 확인해 보았다.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사해四海인데 전체의 44%나 차지하며 온 세상을 의미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나머지도 폭정을 피해 변방 바닷가에 숨는다든지, 치수 공사에서 강과 바다를 연결한다든지 아니면 해변을 따라 이동한다는 등 주로 장소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찾아보면 두 개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논어 “공야장”의 ‘도불행 승부부어해道不行 乘桴浮於海(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 타고 바다에 뜰까 하노라)’라는 글이다. 그냥 바다에 떠있는 것이라는 것과 항해한다는 것으로 해석이 나뉜다. 뗏목으로 먼 바다를 항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노련한 뱃사람이나 가능하다. 자기를 몰라주는 현실에 좌절하여 세상과 동떨어진 먼 바다위에 떠있고 싶다는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니 바닷바람 쐬러가는 것이다. 공자의 바다는 마음의 안식처이며 자유 공간이었다. 하지만 뗏목이 아니고 큰 배 타고 멀리 가고 싶다고 했으면 그 많은 제자들이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고 바다로 나가 여러 이야기를 낚아오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았다.

또 다른 글은 맹자의 “진심” 상편에 나오는 ‘관어해자 난위수觀於海者 難爲水’(바다를 본 사람은 물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이다. ‘물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여기에서는 작은 물에서 노는 사람에게 바다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풀이를 따른다. 달리 말하면 작은 물에서 놀지 말고 큰물에 나가 놀아야 세상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진취적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가 큰 바다를 항해한 자를 직접 만났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같은 장에서 바다를 본 사람과 성인 문하에서 공부한 자를 동시에 예로 든 것은 바다 사람을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삼경三經에서도 “해”를 찾아보았다. 시경과 서경을 합쳐 43번 가량 나오며 주역에는 없다. 삼경 전체 한자의 약 0.05%에 해당한다. 바다가 포함된 단어나 문장을 보면 사해四海와 같은 비유적 표현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도 대부분 장소나 지역을 나타내고 있어 사서에서 본 것과 같은 유의미한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련이 남아 또 찾아본다. 큰 바다[洋]를 찾는다. 사서삼경을 통틀어 양양洋洋이 9번 나온다. ‘전도양양하다’고 말할 때 쓰는 형용사이지 큰 바다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해양海洋을 검색한다. 전혀 없다. 비슷한 단어를 조합하여 검색해도 찾기 어렵다. 하긴 사서삼경 시대에 땅을 다루기도 벅찬데 바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는가.

과거공부를 하면서 인의예지, 천명 등 관념적인 용어들이 온통 머릿속을 맴도는데 바다를 무슨 중요한 단어로 여겼겠는가. 성리학이 왕성했던 조선에서 바다는 종종 열외로 취급되어 그 결과 공도空島, 해금海禁조치 등으로 섬과 바다를 버려두는 상황도 있었지 않은가. 사서삼경과 바다와의 상관관계를 찾는다고 무리하게 시도한 점은 있으나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만하다.

다행히 지금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현재 해운, 조선, 수산, 해양안보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준수한 해양력을 보유하고 있다. 간혹 해운산업에 헛발질을 한다든지 해양력 강화에 트집을 잡는 사례가 있어 바다에 대한 무관심 내지 경시풍조가 도지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 때도 있지만.

이제 경전 구석에 존재감 없이 숨어있는 “해海”를 밖으로 꺼내 짠물에 푹 담근 후 되돌려 놓자. 바다냄새가 사서삼경에 물씬 풍기도록.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 들어오도록. 바닷가 조망에만 값을 후하게 매기지 말고 우리 바다의 가치를 세밀히 따져보자. 해양강국의 완성은 필수과목이며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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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진=ⓒ정명근(jemy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