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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 칼럼]바다 건너 횡재수를 얻다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입력 2020-09-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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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드팝 중에서 유명한 동명이곡의 “세일링(sailing)”이 두 개 있다. 로드 스튜어트의 커버송인 세일링과 크리스토퍼크로스의 그 것이다. 앞의 노래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애청곡이며, 후자는 1981년에 그래미상을 수상한 곡이다. 모두 듣기 편안하며 서정성도 풍부하다. 수평선 너머 석양의 낙조가 딱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의 가사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의미상 공통점이 있다. 뭔가를 얻기 위해 바다 건너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로드스튜어트는 “바다를 건너 고향에 도착하여 그와 함께 자유롭고 싶네”, 크리스토퍼크로스는 “낙원이 멀지 않으니 바람을 잘 다루어 항해를 마치면 그 곳에서 평안함과 순수의 기쁨을 누리며 자유로울 거야”라고 노래하고 있다.

평안과 자유만 원했을까? 두 가수의 조상들은 그 이상을 얻고자 했다. 서양의 관점에서 대항해시대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히크(엔리케)가 1434년 선단을 당시 남하 한계선인 보자도르곶(Cabo Bojador) 너머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이 곳 너머는 암흑의 바다로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다. 그 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서로 거침없이 대양을 누볐고 황당무계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고 세계 바다를 양분하기에 이른다. 이 때부터 시작된 서양의 대양진출과 그에 따른 세계사의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왜 건너 갔을까? 이익 때문이다. 바다 너머에 금과 은, 향신료, 노예, 땅 등 돈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 왕실 그리고 국가의 이익이 그 곳에 있었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제멋대로 영역표시까지 해버렸다. 항해가 성공하면 그야말로 횡재한 것이다. 이래서 한 번 떠나면 돌아올 기약도 불확실한데 기를 쓰고 건넜던 것이다.

다른 쪽의 대항해는 어떠했는가? 명나라의 정화(鄭和)는 1405년부터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7차례에 걸친 대원정을 한다. 해금(海禁)정책의 예외적 대사건이다. 왜 갔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 찾기, 국위선양, 조공무역 등을 예로 든다. 그러나 정화 이후 중국에서 바다는 잊혀졌다. 그의 흔적은 모래사장에 쓴 이름처럼 지워졌다. 이제 와서 바다 찾는다고 해양굴기를 외치고 있다.

대항해의 결과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항해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노골적인 항해와 애매모호한 항해 간의 극명한 차이이다. 맹자(孟子) 첫 편에 오직 인의(仁義)만 있다고 할 게 아니라 이(利)도 인의만큼 중요하다고 했으면 후세 사람들의 원정목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대규모 원정대를 이끌고 장기간 항해를 했음에도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매몰비용이 엄청난 적자항해였다. 우리나라는 어떠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 앞바다를 외국 군함이 제멋대로 드나들었던 구한말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

지구본을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찍어본다. 남의 손에 들어간 그 좋은 땅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남의 말 배우느라 허비한 시간과 노력은 정말 허탈하다. 이제 와서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지구본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최근 바다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못하다. 독도, 중국어선, 해양사고 등 몇 개의 이슈만 떠다니다가 수평선 너머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관련 산업이나 관계 부처의 움직임도 눈에 잘 띠지 않는다. 다른 굵직한 사회적 이슈에 밀린 감도 있지만 마이너리그로 전락한 느낌도 든다.

명품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있다. 바다도 그렇다. 지금 나가야 비용과 노력이 덜 든다. 더 멀리, 더 깊이, 더 자주 가야 한다, 바다 건너, 바다 속 그리고 바다 밑바닥까지 이제는 횡재가 아닌 정당한 이익이 그 곳에 있다. 하루 빨리 바다에서 재산을 불려야 한다. 머뭇거리다가 있는 것 마저 뺏긴다. EEZ, 대륙붕, 북극해, 남극해 등 우리가 꼭 챙겨서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있다. 왜 투기세력은 바다를 찾지 않는지 안타깝다.

어쩌면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시 노래 “세일링”을 듣는다. “돛(canvas)은 기적을 이룰 수 있어”라고 노래한다. 수백 년 전 일엽편주에 불과한 작은 돛배들이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도 원정대 만들어 큰 돛 달고 바다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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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 양동신 전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