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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해양 칼럼]깨어있는 바다

양동신 MT해양 전문편집위원||입력 2020-12-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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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는 바다가 있다.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La Mer)’를 듣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의 요정 샌드맨(sandman)이 찾아와 잠을 뿌린다. 첫 악장부터 잔잔한 바다로 시작하니 나른하여 졸음이 오게 마련이다. 곡 마지막의 폭풍우 치는 소리에서야 잠이 깬다. 바다의 모습을 잘 묘사한 인상주의 음악의 대표곡이지만 잠 오는 바다의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잔잔한 바다는 모두가 원하는 바다의 모습일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바다를 항해할 때 물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상상해보라. 황홀 그 자체이다. 하지만 잔잔한 바다는 지속가능한 안식과 즐거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잠자는 바다가 있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적도무풍대(doldrums)와 아열대무풍대(horse latitude)가 그것이다. 바다의 사막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 범선이 이곳에 갇히면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항해기간이 길어지면 싣고 가던 말을 바다에 버리기도 하여 말위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잠자는 바다는 오래 머무르면 죽음의 바다가 된다.

바다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나야 한다. 바람이 싸이고 싸여 바다가 움직이면 해류가 만들어진다. 바람 따라 해류 따라 사람과 물건이 이동하여 오늘의 세상을 만들었다. 콜럼버스가 무역풍을 이용하여 신대륙을 발견하였다고 하니 바닷바람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편을 보면 붕새(鵬)는 바다가 움직이면[海運] 남쪽바다로 날아간다고 하였다. 바람이 바다위에 두텁게 싸여 바다가 움직여야만 붕새는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드뷔시의 말을 빌자면 바람이 바다를 춤추게 해야 바다가 움직이는 것이다. 붕새가 그 먼 바닷길을 왜 날아가는지 매미나 메추라기 같은 소인배들이 어찌 알겠는가. 큰일을 꾀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자는 바닷바람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바다는 바람 잘 날이 별로 없다. 계절풍, 탁월풍, 돌풍, 태풍 등 여러 가지 바람이 끊임없이 불고 있다. 가끔씩 바람이 잦은 것은 바람의 신들이 지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일 것이다. 바람과 파도가 괴롭히더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라. 바다는 그런 곳이니 참고 견디면서 익숙해져야 한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게 돌아간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마음은 바람처럼 변덕스러워 이쪽저쪽으로 바뀌기도 하고 한 쪽으로 쏠리기도 하고 갑자기 돌아서기도 한다. 바람이 싸이고 싸여 해류를 만들듯 마음도 모이고 모이면 큰 흐름을 만들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않겠는가. 바다와 세상은 깨어있어 늘 시끄럽고 요란한 법이다.

헌데 돌풍이나 태풍은 바다를 움직일 수 없다. 이들은 갑자기 생겼다가 곧 없어진다. 오랫동안 꾸준하게 부는 바람만이 바다를 움직인다. 마음도 그렇다. 광풍은 잠시 위력을 떨치지만 곧 사라진다. 큰 흐름은 작은 장애물들을 가볍게 넘어가면서 제 길을 간다. 잔잔한 바다와 조용한 세상을 너무 기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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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태종태/사진제공=양동신 MT해양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