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의 공존은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가장 소중한 교훈이자 원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바다에 관한 이해는 매우 취약합니다. 바다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지적 대중화 작업은 바다를 통한 꿈과 희망의 실현-미래비전-의 초석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인문과 과학을 넘나드는 소통과 융합의 통섭학자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가 해양문화전문지 ‘디오션’의 편집주간으로서 해양르네상스의 부활을 천명(闡明)하였다.

/사진=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

주강현교수는 우리나라 해양 분야의 가장 독보적인 학자이다. 그가 저술한 해양관련 전문서적은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교양서로서 오랫동안 읽히고 있다. 2008년 해양수산부의 해체가 대두되던 당시 해체반대위원장을 맡았지만, 해양수산부는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5년 후 2013년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해양수산부가 부활 되었을 당시를 떠올리며 30여 년간 다져온 해양에 대한 애정을 'MT해양'과의 인터뷰에서 털어 놓았다.

▷ 우리에게 ‘바다’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학문은 어느 방향에서 접근해도 결국은 해양으로 이어진다. 바다는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는 바다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다를 통한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정체된 해양 문명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우리의 해양르네상스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 모든 노력을 다할 생각이다

▷ 인간은 원래 깊이나 바닥을 알 수 없는 것에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해양활동은 다른 민족에 비해 현저히 제한적인데 무엇 때문인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두렵기 짝이 없는 망망대해로 나서려면 그 두려움을 이겨낼 만한 이익이나 모험심이 있어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DNA에는 바다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더 크게 깃들여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운세나 사주풀이를 보면 ‘물가에 가지 마라’ 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예로부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불장난을 하지 말고 물가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불은 뜨거운 것이고, 물이 깊으면 위험한 것이구나를 알려면 불장난을 해봐야하고, 또 물에 들어가 놀아보며 경험을 해봐야만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정서의 부작용은 현대에 와서 ‘물 공포증’으로 나타났다.
근대에는 언제 어떤 식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 사고 때문에 바다를 멀리하였기에 바다를 지배하고자 했던 국가들에 핍박을 당해왔지 않는가. 한국인들의 ‘물 공포증’은 해양진출의 걸림돌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의 3~40대는 골프나 등산 등이 주로 하는 야외 여가활동인데 일본의 골프장에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운동과 취미생활로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골프보다 바다에서 즐기는 서핑, 요팅 등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 바다를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우리가 배울만한 외국의 사례가 있다면?
네덜란드 로테르담 해양박물관에 가면 박물관 뒤편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준비되어 있다. 작은 배 모양의 미끄럼틀인데, 박물관에 관람 온 아이들은 배 모양 놀이터에 올라가 선장이 되어보고 미끄럼틀도 타며 놀이를 통해 배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초등 교육과정에 해양안전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쉽게 말해 현장에서 실전교육을 실행하는 것인데 아이들을 바다에 데리고 가서 안전요원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구명조끼를 입히고 바닷물이 아이들의 목까지 차오르는 지점에서 일제히 아이들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아이들은 바닷물을 먹으면서 공포심을 갖게 되고, 본능적으로 물 밖으로 뛰쳐나오게 되는데 이런 실전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은 물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또 안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바다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습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다의 재난에 처했을 때 미리 학습되어 있었다면 침몰하는 배 안에서 당연히 뛰쳐나왔을 것이다. 세월호는 아이들을 인솔하던 선생님부터 재난시의 대처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는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났을 때, 또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이미 엄청난 대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국, 호주 등 해양선진국에서 가르치는 해양체험교육과정 등이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시급히 시행되어야만 한다.

/사진=2015년도에 발행된 디오션 Vol.1, Vol.2호

▷ 해양 전문지 ‘해양과 문화’의 발간을 13년간 주관하였고 다시 그 후속편인 ‘디오션’의 편집주간을 맡으셨는데?
우여곡절 끝에 해양수산부가 부활했지만 천안함, 세월호 등의 대형 사고로 인해 해양수산부는 리스크 부처로 낙인 찍혀버렸다. 그렇기에 산업, 레저, 정책 등 해양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마침 국책연구소인 해양수산개발원이 해양문화전문지 ‘디오션’을 발간하게 되었고 편집주간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우리 해양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루자”는 일생의 목표와 방향이 일치하기에 흔쾌히 맡게 되었고 두 권을 성공적으로 발간하였다.
한국 사람들은 IT에 매우 능숙하다. IT는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존재한다. 즉, 대중매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날로그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SNS에는 정확한 정보가 아닌, 여러 사람들을 거쳐 유포되면서 와전된 내용들이 즐비하다. 삽시간에 퍼지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세계에서는 정보의 신뢰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소 느리지만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오프라인 매체는 결코 없어질 수 없는 것이다.

▷ 머니투데이-MT해양에서는 2016년 한 해 동안 펼쳐갈 연간 캠페인 “바다를 통한 꿈과 행복의 실현”을 기획하였다. ‘디오션’의 편집방향과 동질성이 있는가?
해양의 여러 이야기들을 통합적인 관점으로 캠페인을 기획해야 한다. 즉,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양문명의 개화가 멈춰버린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해양의식을 개방적이고 글로벌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미디어가 해야만 한다. 어느 시인은 노를 젓다가 놓치니 비로소 큰 바다가 보였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에는 바다의 자리가 없었다. 이제 잠시 멈추고 삶과 휴식의 터전으로서 바다를 뒤돌아보아야 할 때이다.